market2026년 3월 6일
제2편. ‘1거래소–1은행’ 관행과 원화마켓의 구조적 한계

2편. ‘1거래소–1은행’ 관행과 원화마켓의 구조적 한계

KBR Research

국내 가상자산 원화마켓에서 사실상 관행으로 자리 잡은 ‘1거래소–1은행’ 구조와 그로 인한 진입 장벽, 김치 프리미엄, 글로벌 유동성 단절 등의 구조적 문제를 사례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2편: ‘1거래소–1은행’ 관행과 원화마켓의 구조적 한계

대한민국 가상자산 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살펴봐야 할 구조가 있습니다. 바로 ‘1거래소–1은행’이라는 사실상의 관행입니다.

한국에서 원화마켓을 운영하려면 거래소가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연동해야 합니다. 이용자가 거래소에 원화를 입금하거나 출금하려면 동일 명의의 은행 계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자금세탁 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며, 은행은 거래소와 연 동된 계좌를 통해 거래를 모니터링하고 의심거래를 보고하는 등 AML 의무를 수행합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의 ‘시장 관문’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거래소가 원화마켓을 열기 위해서는 기술력이나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는 것보다 먼저 은행과의 제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이 실명계좌를 발급해주지 않으면 거래소는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없고, 결국 코인 간 거래만 가능한 코인마켓으로 후퇴하거나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구조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후오비코리아입니다. 후오비는 글로벌 거래소 브랜드를 기반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원화마켓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원화 거래가 중단되었고 결국 사업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실명계좌 확보 문제로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웠던 사례도 있습니다. INEX는 국내에서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을 준비했지만 은행 실명계좌 확보 문제로 인해 원화마켓을 열지 못했습니다. 서비스 준비 여부와 관계없이 은행 제휴가 확보되지 않으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두 사례는 ‘1거래소–1은행’ 관행이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사례는 시장에서의 퇴출을, 다른 사례는 시장 진입자체의 불가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을 점점 더 폐쇄적인 형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종종 ‘금융 갈라파고스’라는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글로벌 리테일 은행들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국내 중심 구조로 남아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비슷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화마켓은 상당한 규모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 이용자 중심의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해외 투자자가 한국 원화마켓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반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우 자금 유입 구조가 훨씬 다양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우선 이용자는 개인 Web3 지갑에서 직접 거래소로 가상자산을 입금할 수 있습니다. 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기능으로, 은행 계좌와 관계없이 자산 이동이가능합니다.

또한 많은 글로벌 거래소는 해외 은행 계좌를 통한 법정화폐 입금도 지원합니다. 이용자는 국제 송금이나 해외 계좌를 통해 거래소 계정으로 자금을 입금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달러나 유로 등 다양한 통화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거래소는 신용카드 결제나 모바일 결제 수단을 통해서도 자금을 입금할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pple Pay와 같은 모바일 결제나 카드 결제를 통해 가상자산을 구매하거나 거래소 계정에 자금을 충전하는 방식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즉 해외 거래소의 경우 자금 유입 경로가

① 개인 지갑 → 거래소

② 해외 은행 계좌 → 거래소

③ 카드·모바일 결제 → 거래소

등 여러 방식으로 열려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유동성이 자연스럽게 거래소로 유입되도록 만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거래소가 KYC나 AML 절차 없이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요 글로벌 거래소들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상당히 엄격한 고객 확인 절차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용자가 거래소 계정을 개설하면 여권이나 신분증, 얼굴 인식 인증 등을 통한 KYC 절차가 이루어집니다. 일부 거래소에서는 주소 인증이나 추가적인 신원 확인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거래소는 블록체인 분석 도구를 활용해 입금되는 가상자산의 출처를 추적합니다. 체이널리시스, 트래블룰 솔루션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불법 자금과 연관된 주소나 믹싱 서비스, 제재 대상 주소와의 연관성을 분석합니다.

의심스러운 거래가 탐지될 경우 거래소는 계정을 동결하거나 추가적인 확인 절차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거래 규모나 이용자의 활동 패턴에 따라 추가적인 AML 검증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해외 거래소는 은행 계좌 하나에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① 신원확인(KYC) ② 블록체인 분석 기반 자금 추적 ③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통해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원화마켓은 사실상 ‘국내 은행 계좌 → 거래소’라는 단일 경로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해외 투자자의 직접 참여가 제한되고 글로벌 유동성과의 연결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폐쇄적 구조는 또 하나의 특징적인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김치 프리미엄’입니다.

김치 프리미엄은 동일한 가상자산이 한국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격 차이가 발생하면 차익거래가 이루어지며 빠르게 가격이 수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이러한 괴리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해외 거래소와 원화마켓 간 자금 이동이 쉽지 않다는 점, 해외 투자자의 직접 참여가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원화 유동성이 특정 거래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됩니다.

특히 해외 자금이 자유롭게 유입되지 못하고 차익거래가 제한되면 가격 괴리의 정도는 확대되고, 빈도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Bithumb·Gate.io 거래 데이터 분석
그림1: Tiger Research, “2 Hour Kimchi Premium Shift After $AVAIL Listing”(2024.07.23), Bithumb·Gate.io 거래 데이터 분석.

2024년 8월 발생한 어베일(AVAIL) 사태는 이러한 구조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습니다.

어베일은 글로벌 거래소 상장 이후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었고 상장 직후 국내 시장에서 가격이 글로벌 시장 대비 크게 상승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해외 거래소 가격 대비 1000%가 넘는 프리미엄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1] 그러나 이러한 프리미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급등 직후 대량 매도 물량이 출회되면서 가격이 –80% 이상 급격히 하락했고 단기간에 큰 가격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남겼습니다.

첫째, 국내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 간 가격 괴리가 매우 크게 발생했습니다. 둘째, 상장 직후 형성된 높은 프리미엄이 일부 시장 참여자에게 대규모 매도 기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셋째, 한국 시장의 프리미엄 구조가 특정 프로젝트나 참여자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이 때문에 어베일 사태는 김치 프리미엄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특정 프로젝트나 특정 거래소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한국 시장의 구조적 특성이 이러한 현상을 발생시키기 쉬운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원화마켓이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해외 유동성과의 연결이 제한될수록 가격 괴리는 더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참여자가 제한된 시장에서는 특정 시점에 유동성이 집중되면서 가격 변동이 더욱 크게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치 프리미엄 자체를 단순한 시장 현상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소와 은행 계좌 구조를 완화하고 원화 유동성 이동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원화를 사용하는 한국 이용자를 대상으로 또 하나의 ‘원화 형태의 자산’을 만드는 것이 과연 시장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원화마켓 자체의 폐쇄성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만약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국내 이용자를 위한 또 하나의 결제 수단으로 만든다면 시장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이를 글로벌 유동성을 유인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면 그 전에 원화마켓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구조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현재의 ‘1거래소–1은행’ 관행은 자금세탁 방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 경쟁을 약화시키고 원화마켓을 폐쇄적인 구조로 만드는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시장 경쟁과 글로벌 유동성 확대를 동시에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인 ‘거래소 만능 체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상장, 거래, 보관, 감시 기능이 하나의 조직 안에 결합된 구조가 어떤 이해 상충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시장 경쟁과 투자자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본 리포트는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자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